본문 바로가기
국내여행

제주 12일 여행 - 5일차

by 유영 2022. 1. 24.

이드레의 땅콩 아이스크림과 땅콩 아포가토

 

어젯밤 땅콩잼을 빵빠레에 발라먹고 서글픔을 느낀 우리는, 날이 밝아 잠에서 깨자마자 이드레에 갈 것을 결의하였다. 이드레의 아이스크림을 재현하려는 우리의 엉성한 시도는 오히려 이드레에 대한 그리움만 더 키우고 말았기 때문이다.

 

두 번째 방문이라 사장님들도 얼굴을 기억하셨는지 반갑게 맞아 주셨다. 전에 어렴풋이 봤던 거대한 개... 도 꼬리를 붕붕 흔들었다. 메뉴를 주문하고 자리에 앉는데, 사장님이 플라잉디스크를 개에게서 빼앗아가시는 게 보였다. 일을 해야 하니까. 그렇지만 개는 그걸 가지고 놀았으면 하는 눈치였다.

 

히히 던지기 놀이 할래?
궁뎅이 쓰다듬는 것을 매우 좋아하는 개

 

사장님께서 흔쾌히 허락해 주셔서 플라잉디스크를 몇 번 가지고 놀다가, 가운데가 뚫려 있는 보라색 무거운 공으로 도구를 바꿔 던지기 놀이를 했다. 옆집 진돗개같이 생긴 강아지도 같이 놀더라. 던진 걸 주워오는 게 뭐가 그리 재밌는지, 내가 아이스크림을 먹으려고 돌아가려고 하면 옆에 와서 공을 툭 떨어뜨리고 날 애잔하게 바라본다. 말은 못 해도 뭘 말하고 싶은지는 너무나도 잘 전해졌다.

 

너무 귀엽잖아. 너 그거 반칙이야.

 

던지기 놀이 계속 하지 않을래?

 

아이스크림도 다 먹고 개랑도 열심히 놀았겠다, 이제 길을 나서려고 하는데 개가 날 갑자기 껴안았다. 얘가 안 놀아준다고 날 공격하나 싶어 깜짝 놀랐는데, 공놀이가 너무 하고 싶었는지 한번 졸라본 것 같았다. 덕분에 옷에 개의 침 자국이 남았지만, 또 그냥 가긴 정이 없다고 생각되어 몇 번인가 더 공을 던져 주었다.

 

액체 형태의 즐거움

 

나중에 또 놀자고 약속하며 길을 나섰다.

 

하늘은 맑아라

 

제주에, 월정리에 며칠간 있으면서 제주에 사는 것에 관심이 생기기 시작했다. 여기서 교직 생활을 한다면 어떨까? 자기 개발을 해서 다양한 연수 프로그램을 만들면 어떨까? 그런 생각을 하다가, 우리가 살 곳에 대해서도 이야기를 나누었다.

 

이런 시골 주택이 좋아. 넓은 마당이 딸린. 마당 채로 사서 집을 잘 개수하면 살기 좋을 것 같아. 이런저런 망상들의 결과 우리는 이 주변의 부동산 매물을 찾아보고 어떤 느낌인지 살펴보았다. 집을 본다고 해서 우리가 진짜로 제주도에 내려올 것도 아니고, 그 집이 우리 것이 되는 것도 아니지만, 우리는 행복한 상상의 나래를 펼쳤다. 차는 저기에 대어 놓아야지. 텃밭에는 이런저런 식물을 심어야지. 택배가 느릴 텐데 어떡하지.

 

그러다 보면 우리에게도 아늑한 보금자리가 갑자기 뿅 생기기라도 할 것처럼.

 

어쨌든, 오늘의 일정은 21코스 역올레. 성산에 있는 21코스 종점에서 시작해서 지미봉을 오르는 것까지가 공식 계획이고, 거기서 더 갈 수 있으면 가고 못 가겠으면 마는 것이 비공식 계획이었다. 우리는 또 걸었다. 바닷바람을 맞으며.

 

새가 정말 많다

 

가다가 오징어(한치일 수도 있고... 해산물 전문가가 아니라 잘 모르겠다)를 말리는 것을 보았는데, 오징어가 많다 못해 아예 오징어로 울타리를 만들어놓은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굉장히 맥주가 생각나는 비주얼이었는데, 노렸는지 어쨌는지는 모르지만 길가에 오징어와 맥주를 파는 노점 같은 것들이 왕왕 보였다. 오징어도 말리고 손님도 모으고, 일석이조가 이런 것이겠구나!

 

맛있겠다.

 

21코스 종점에서 출발해서 주황색 화살표를 따라 걸으면, 자신의 왼쪽이 육지이고 오른쪽이 바다인 채 걷게 된다. 그 말인즉슨 왼쪽에는 지미봉이 그 자태를 뽐내고 있고, 오른쪽에는 우도와 성산일출봉이 앉아 있다는 것이다. 풍경이 정말 좋아 흐뭇하게 걷다가도, 지미봉이 생각보다 크고 높아 보여서 저걸 어떻게 올라가지 하는 생각이 가득해지고 만다.

 

우도와 성산일출봉
저 멀리 해녀 석상이 잇는 부분이 불턱인 것 같다.

 

한참 걷다 보니, 지미봉이 고개를 치켜들고 봐야 할 정도로 거대해져 있었다. 올라가기 전에 점심을 먹어야 중간에 안 퍼질 것 같아서, 주변에 맛있는 식당을 검색하다 종달부부(제주시 구좌읍 종달로1길 124-4)에 찾아갔다. 그러고 보니 이 동네 이름이 종달리였구나. 종달새가 떠오르는 아주 귀여운 이름이다.

 

얼핏 봐서는 식당이라고 생각하기 어려운 비주얼이다.

 

별다른 고민 없이 정식 2인분을 시킬까 하다가, 정식 2인분에 감자채전을 추가한 세트메뉴가 있어 그걸 주문했다. 종달부부라는 이름과 다르게, 남편 되시는 사장님? 혼자서 서빙도 하고 요리도 하시더라. 손님을 대하는 것이 그렇게 익숙하지는 않으신 것 같았는데, 그런 서투른 태도에 오히려 마음이 더 편안해지는 것 같았다. 원래는 아내 사장님이 하시다가, 무슨 사정이 있어 혼자 하시는 게 아닐까 추측했다. 

 

밑반찬
흑돼지 두루치기
감자채전
ㅋㅋㅋㅋㅋ 귀여워

음식들은 전반적으로 간이 그리 강하지 않았는데, 하나하나가 입맛에 정말 잘 맞았다. 여자친구랑 감탄하면서 먹음. 국으로는 미역국이 나왔는데, 미역국을 싫어하는 터라 평소라면 미역국을 안 먹었을 것이다. 그런데 밑반찬을 먼저 맛보고 나니, 이런 솜씨라면 미역국도 맛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감이 생겼다. 그래서 미역국을 한 숟가락 떠 먹었는데...

 

응?

 

나 미역국 싫어하지 않네...

 

먹을 수 있는 음식이 한 가지 더 늘었다.

 

지미봉에 오르자

 

식사를 마치고 슬렁슬렁 걸어 지미봉 입구에 도착했다. 3년 전 기억이 아른아른 떠오른다.

 

2019년 초, 나는 동기들과 함께 이 곳을 올랐다. 그것은 나에게 아주 강렬한 고통이었다. 거의 3분 올라가고 5분 쉬는 꼴로 올라갔던 것 같다. 그 당시 나는 신체 조성이 지금보다도 더 지방질 슬라임에 가까웠기 때문에, 중력의 사랑을 너무 많이 받았던 것이다.

 

이번에도 그렇게 될까? 그래도 그때보다는 낫지 않을까? 불안한 마음을 품고 나는 애플 워치의 운동 종목을 야외 걷기에서 하이킹으로 변경했다.

 

성산일출봉이 한 눈에 내려다보이기 시작한다.

 

그리고 불길한 예감은 항상 맞더라. 그때보다는 나았지만, 이번에도 나는 숨을 헉헉 몰아쉬며 내 신세를 한탄했다. 왜 나는 슬라임인가! 왜 나는 중력의 사랑을 떨쳐내지 못하는가! 10분을 가다가 5분을 쉬고, 또 5분 가다가 3분을 쉬고... 그러기를 반복하면서, 여기서 포기하고 내려가고 싶은 마음이 계속 들었다.

그래도 그럴 때마다 마음을 부여잡고 계속 올라갔던 것은, 뒤를 돌아볼 때마다 바뀌는 풍경 덕분이었다. 처음엔 나무밖에 보이지 않다가도, 어느 순간부터 성산일출봉이 빼꼼 보이기 시작했다. 또 숨을 헉헉 몰아쉬다 뒤를 돌아보면 나는 조금 더 높아져 있었다. 그리고 힘을 다해 정상에 올라갔을 때,

 

성산일출봉과 종달리가 한 눈에 내려다보인다.

 

그래.

 

3년 전의 나도 이 풍경을 보고, 지미봉에 올라오기를 잘 했다고 생각했던 것 같다.

 

이번에도, 올라오길 정말 잘 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래서 사람들이 계속 등산을 하는 거겠지.

 

살은 조금 많이 빼야겠다.

 

지미봉은 올레길이다.

 

풍경에 감탄하고 나서 지미봉에서 내려왔다. 내려가는 길도 경사가 가파른데, 올라온 길에 비해 계단이 적어서 체감상 더 힘들게 느껴졌다. 마지막에 가서는 밧줄 난간을 꼭 붙잡고 미끄러지듯이 내려온 것 같다. 땅만 고르게 되어 있었으면 데굴데굴 굴러서 내려왔을 텐데!

 

그 뒤 종달리에 나와 있는 부동산 매물을 하나 보고 집으로 향했다. 부동산 하는 사람들은 이걸 '임장'이라고 하는 것 같던데, 아직 나에게는 거북하게 느껴진다. 너무 엄숙하고 공적인 느낌이 든다고 할까? 잘 모르겠다.

 

아무튼 오늘도 폭삭 속았수다.

 

6일차에서 계속

'국내여행' 카테고리의 다른 글

제주 12일 여행 - 7일차  (0) 2022.01.25
제주 12일 여행 - 6일차  (0) 2022.01.25
제주 12일 여행 - 4일차  (0) 2022.01.24
제주 12일 여행 - 3일차  (0) 2022.01.22
제주 12일 여행 - 2일차  (0) 2022.01.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