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술을 이것저것 섞어 마셨는데도 아침에 그럭저럭 괜찮은 정신으로 일어났다. 제주시에 가서 렌트 예약한 차를 가져와야 하는데, 어제 술 마시면서 J가 데려다주겠다고 했다. 과연 아침에 자고 있으니 깨우러 왔고, 나는 헐레벌떡 옷을 챙겨입고 J를 따라갔다.
근데 J의 차가 포르쉐 박스터다. 뚜껑도 열린다. 태어나서 처음으로 스포츠카를 타봤다. 나는 스포츠카 배기음이 너무 커서 지나갈 때마다 눈쌀을 찌푸리는데, 막상 스포츠카에 타보니 너무 듣기 좋더라. 중독적이라 의도적으로 멀리해야 할 것 같았다. 하차감도 끝내줄텐데 어제의 여파 때문에 감사 인사만 하고 내려서 버스를 기다렸다.
렌트한 차를 가져다 놓고 씻은 다음에 L이랑 여자친구랑 나랑 셋이서 화순한가네식당(서귀포시 안덕면 화순해안로 109)에 갔다. 감사하게도 L이 차를 태워주었다.
그곳에 도착하여 대충 길가에 차를 대놓고 식당 쪽으로 걸어가는데, 식당에서 현지인으로 보이는 아저씨들이 이쑤시개를 물고 가는 것을 보았다. 현지인도 자주 찾는 식당이라고 생각했는데, 식당에 도착해보니 이미 웨이팅이 두 팀정도 있었다. 그래도 회전이 빨리 되는지, 우리는 얼마 안 기다리고 들어갈 수 있었다. 김치찌개를 먹고 싶었는데 다 나갔다고 해서, 튀김돔베고기 정식과 돼지두루치기 2인분을 시켰다.
돔베고기는 튀겨서 그런지 겉이 바삭한 데 비해 속이 매우 촉촉했다. 그리고 사이드로 나온 저 양념게장 역시 밥도둑이었다. 두루치기 찍는 걸 까먹었는데, 간이 심심한 편이고 돼지 맛이 더 잘 느껴지도록 한 것 같았다. 여기도 대성공! 왜 가는 데마다 맛있는거지? 이번 여행은 식도락이 따로 없다.
밥을 먹고 나니, 아까 미리 밥을 먹은 J가 어떤 카페에서 기다리고 있다고 했다. 차를 타고 한 30분정도 달려서 신창풍차해안도로에 있는 카페 파람(제주시 한경면 한경해안로 470)에 갔다. 그곳에서 J가 키우고 있는 강아지 봉순이와 검순이를 만났다.
봉순이는 밥도 잘 먹고 살도 좀 오르고 활발한 개였는데, 검순이는 유기견이었던 과거가 있어 그런지 사람 손을 조금 무서워하고 밥도 덜 먹는 것 같았다. 그런데 질투가 좀 있는지, 검순이를 한창 쓰다듬다가 봉순이를 쓰다듬으려 하니 자기 머리를 내 손에 가져다 댔다. 뭐야 너무 귀여워.
주변 풍경도 멋있었다. 풍력발전기가 서너 대 정도 모여있는 건 봤어도 이렇게 많이 모여있는 걸 본 것은 처음이다. 전기가 너무 많이 생산되면 이 발전기들이 종종 멈추기도 한다고 J가 말해주었다. 근데 발전하고 남은 전기는 어디 다른 곳으로 보내면 되는 것 아닌가? J도 동의하지만 왜 안 그러는지는 잘 모르겠다고 했다. 세상은 생각보다 얼렁뚱땅 돌아가고 있는 것이다.
L은 풍력발전기가 저렇게 많이 모여있으니 징그럽다고 했는데, 가만히 보다 보니까 정말 그런 것 같았다. 풍력발전기의 블레이드가 통일된 모양으로 돌아가고 있는 것이 아니었기 때문에, 외계인이 지구에 침략해서 사용할 에너지를 수집하는 모습 같기도 했다. 너무 망상인가? 그래도 듣고 나니까 조금 징그럽고 생경하긴 하더라.
카페에 한동안 앉아 있다가 해안도로를 따라 조금 산책을 했다. J가 선심을 써서 봉순이와 같이 산책할 수 있도록 목줄을 내게 쥐여주었는데, 봉순이의 힘이 생각보다 정말 강해서 조금 당황했다. 그리고 봉순이가 호기심이 정말 많은 터라, 같이 걷기 위해서는 여기저기서 냄새를 맡는 봉순이를 끌어당겨야 했다.
그래도 조금 적응되니 괜찮았는데, 봉순이가 이번에는 내 눈치를 보더니 조금씩 속도를 높였다. 나도 뭔가 싶다가 조금씩 속도를 높이더니, 어느새 우리는 전속력으로 질주하고 있었다. 봉순이는 달리니까 기분이 좋았던 것 같다. 나도 나중에는 개와 같이 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럼 맨날 산책하면서 건강하게 살 수 있겠지?
해안도로 산책이 끝나고 다음으로 향한 곳은 J가 '인생샷 명소'라고 부르는 곳이었다.
'인생샷 명소'라더니, 과연 멋진 풍경이었다. 우리는 사진을 몇 장 찍고, 옆에 있는 지층을 보며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었다. 초등 임고를 공부한 사람이 세 명이나 되니, 자연스럽게 지층의 형성 어쩌고 하는 이야기가 나왔다. 영어 선생님인 J는 적당히 맞장구를 치며 듣고 있는 것 같았다.
그러고 J는 친구를 보러 가겠다고 헤어지고, L은 성산으로 떠나겠다고 했다. L이 우리 차 바로 옆에 내려줘서 우리는 우리 차로 갈아타고, 일주로를 따라 늘어서 있는 직판장에서 레드향과 천혜향을 5개씩 샀다. 그리고 화순에 있는 오들락(서귀포시 안덕면 화순임중로7번길 56)에서 흑돼지 바베큐를 먹었다. 바베큐는 진짜 우리가 바베큐 해먹는 게 아니고 숯불에 구워서 나오는 건데, 전라도 밥상이라는 이름에 걸맞게 반찬이나 흑돼지나 너무 맛있었다. 흑돼지 오겹살을 된장 깻잎에 싸먹으라고 추천해 주셨는데, 정말로 잘 어울렸다. 또 고추를 넣어 칼칼한 두부황태국도! 전라도식 음식이라 간이 좀 세게 되어 있었는데, 그게 오히려 밥을 부르는 맛이었다. 여자친구는 배부르다고 해서 밥을 좀 남겼는데, 그것까지 내가 모두 해치워 버렸다.
먹기만 해서 사진은 없음.
8일차에 계속
'국내여행' 카테고리의 다른 글
제주 12일 여행 - 6일차 (0) | 2022.01.25 |
---|---|
제주 12일 여행 - 5일차 (0) | 2022.01.24 |
제주 12일 여행 - 4일차 (0) | 2022.01.24 |
제주 12일 여행 - 3일차 (0) | 2022.01.22 |
제주 12일 여행 - 2일차 (0) | 2022.01.20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