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국내여행

제주 12일 여행 - 1일차

by 유영 2022. 1. 19.

제주도에는 풍력발전시설이 많다

 

내가 갔던 여행들을 이제부터라도 좀 기록해 보려 한다.

그동안 이곳저곳으로 여행을 많이 다녔는데, 정작 기록한 것이 없어 사진만 가끔 돌아보며 만족하고 있다.

일기처럼 하루하루 기록해 둔다면 기억도 더 많이 나고 좋을 것 같다. 성실하게 살아보자구.

 

어쨌든,

제주도로 가자고 이야기가 나온 것은 내가 한창 임고를 공부하고 있었던 12월이었다. 여자친구가 제주도에서 한달 살기를 해보자고 해서 그러자고 했다. 근데 현실적으로 한달 살기는 어려울 것 같아서, 약간의 타협 끝에 1월 18일부터 1월 29일까지 12일동안 돌아다니기로 했다.

임고 2차 준비는 제주도를 생각하며 버텨냈다... 고 하면 약간 과장이고, 하루하루 스터디를 하면서 종종 제주도에서 보낼 시간들을 생각했다. 얼마나 즐거울까, 얼마나 예쁠까... 하면서. 제주도에서 들을 플레이리스트를 같이 만들면서, "푸른 바다 제주의 언덕, 올레길마다 반짝이는 그리움을 따라" 걷는 길들을 상상했다.

 

그래서 아침에 세종에서 B3 버스를 타고 청주공항으로 출발했는데... 출근 시간인 것을 깨닫지 못하고 길바닥에서 30분을 버린 나머지 비행기를 놓치고 말았다. 인생 처음으로 비행기를 놓쳤는데, 그래도 제주도 가는 비행기고, 다음 시간 비행기가 가까이 있고, 큰 손해가 아니라 그럭저럭 괜찮은 마음이었다. 이때 아니면 언제 또 놓쳐보겠어. 앞으로는 절대 안 그럴건데. 절대. 절대.

 

(여기에 유튜브 링크 입력)

 

어쨌든 그런 우여곡절 끝에 비행기를 타고 제주도에 도착했다. 하늘에서 내가 알아볼 수 있는 도시나 지역들이 종종 보일 때, 그럭저럭 여행을 많이 다녔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가방을 부탁해(http://www.gabangplease.net) 라는 곳에서 짐 옮기는 서비스를 예약했었는데, 제주공항에 내리고 나서 바로 기사님을 만나 짐을 맡겼다. 아주 친절하시고 일처리도 확실해서 정말 좋았다.

 

짐을 맡기고 나서 제주공항본점공항뚝배기(제주시 연삼로 31)에서 점심을 먹었다.

 

숯불
서비스로 주신 두루치기
해물뚝배기
밑반찬

 

해물뚝배기에 숯불갈비가 10000원(2인부터 주문 가능~)이라고 해서 매우 가성비가 좋다고 느꼈는데, 서비스로 두루치기까지 주셔서 너무 감사했다. 계속 이렇게 팔면 남는 게 있냐고 중얼거리면서 먹었다. 음식 퀄리티도 괜찮고 공항에서도 가까워서, 제주에 여행을 온다면 자주 들를 것 같다.

 

날씨가 정말 좋았다.

 

밥을 먹고 올레길을 따라 걸어보(려고 노력하)였다. 노력했다는 것은 공항에서 올레길을 시작하기가 정말 어려웠기 때문인데, 17번 올레길을 어디서 시작할까 하다가 종점부터 시작하기로 하고 종점으로 걸었다. 중간에 올레길을 탈출해서 편한 대로 막 걸었다. 제주도는 원래 막 걷는 여행 아니야?? 하면서 정신승리를 했다.

정신승리는 나의 특기다. 내가 정신승리에 능하지 않았다면 나는 나의 인생의 비참함에 허우적대며 삶은 고통이라는 말을 온종일 곱씹었을 것이다. 아 허점 많은 인생이여!

 

제주도에서는 맑은 날 주변에 높은 건물이 없으면 병풍처럼 펼쳐진 한라산을 볼 수 있다.

 

걷고

 

야자나무가 정말 이국적인 분위기를 낸다

 

걷다가 17번 올레길의 종점에 다다랐다. 제주 시내에 있는 간세라운지 X 관덕정분식(제주시 관덕로8길 7-9)이라는 곳이다. 발바닥 아파서 참느라고 사진은 못 찍었는데, 그곳의 안내원 분이 매우 친절하셔서 이런저런 것들을 알려주셨다.

 

이하는 알게 된 사실 요모조모.

1. 간세는 제주 조랑말의 별명이고 게으른 놈이라는 뜻이다. 올레길 여권에 찍는 도장은 간세 모양을 한 파란 상자에 들어있다.

2. 지금까지 12700명? 10270명? 정도가 올레길을 완주하고 메달을 받아갔다.

3. 파란 화살표는 정방향, 주황 화살표는 역방향.

4. 파랗고 빨간 리본을 따라가면 잘 가고 있는 것이다.

 

간세 얘기를 들으면서 어? 난가? 하는 생각을 했다. 안내원의 친절한 배웅을 뒤로 하고 스탬프를 쾅쾅 찍은 다음에 길을 나섰다.

 

절로 가면 정방향, 절로 가면 역방향
튼튼하게 매여 있는 리본

 

화살표를 따라 리본을 찾으며 걷다 보니까, 이게 생각보다 괜찮은 관광 자원이다 싶었다. 화살표는 적정 거리마다 배치되어 있어 헷갈리지 않고 길을 찾을 수 있었고, 화살표랑 리본을 찾으려 두리번거리는 과정에서 올레길의 다양한 풍경을 자연스레 눈에 담게 되었다.

그런데 자꾸 화살표 방향을 바꿔 놓고 싶은 생각이 들었다. 화살표를 위쪽으로 향하게 달면 어떨까? 나는 얼마나 처맞을까? 그런 생각을 하면서 화살표와 리본을 따라 걷다가 클래식문구사(제주 관덕로4길 1-2)라는 매력있는 간판을 보았다.

 

클래식문구사. 역방향으로 걸으면 잘 안 보이겠다 싶었다.

 

클래식문구사에서는 다양한 연필, 지우개같은 문구와 빈티지 물품들을 팔고 있었다. 찻잔이 정말 예뻐서 사고 싶었는데 가격을 보고 바로 신 포도 해버렸다. 아니야... 어차피 넣을 곳도 없어... 어떻게 가져가...

 

색색깔의 문구들. 연필이 아주 부드럽게 잘 써져서 비싼 값을 하는구나 싶었다. 물론 나는 글씨를 못 써서 사지 않았다
다양한 가격대와 디자인의 찻잔. 너무 예쁘다.

 

그 옆에는 이후북스라는 셀렉트 북스토어가 있었는데, 재미있어 보이는 책이 많았다. 페미니즘 관련 서적들이 눈에 띄었고, 존 버거의 <사진의 이해> 라는 책을 발견했다. 재밌어 보여서 나중에 사든지 빌리든지 해서 읽어봐야겠다고 생각했다.

클래식문구사와 이후북스를 보며 가게 주인들이 정말 멋있어 보였다. 누구나 자기 좋아하는 일을 하며 살아가고 싶어하지만, 정말로 그럴 용기가 있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기 때문이다. 부디 하시는 일 즐겁게 오래오래 하시길!

 

근데 이후북스 가게 파사드만 나오게 찍은 사진이 지금 보니까 없다.

 

어쨌든 또 걸음을 옮겼다.

 

공항 근처라 비행기가 자주 보인다
정갈한 골목. 나도 정갈한 사람이 되고 싶다 (글렀다)
나를 저격하는 듯한 돌멩이. 그래도 근성이 없는 삶은 편안하다.
안녕히 가세요. 또 오세요.

 

올레길을 역방향으로 따라 걸으면서 수능 끝난 고3으로 보이는 남학생들 사진도 찍어줬다. 찍고 나서 가니까 뒤에서 와!!! 대박!!! 이런 환호성이 들려서, 내가 찍어준 사진을 보고 놀랐다고 생각하기로 했다.

 

걷다 걷다 보니 용두암으로 내려가는 곳이 있었다. 굉장히 뜬금없는 곳에 유명한 게 있네? 내려가서 용두암 사진을 찍었다.

 

라마다가 높다 하되 용 앞의 건물이라

 

가다가 발이 아파 도저히 못 걷겠어서 버스를 타고, 제주도 출신 대학 동기인 형을 만나러 연동으로 향했다. 돌담흑돼지 연동점(제주시 연동7길 35)에서 흑돼지를 먹기로 했다.

 

근고기의 첫 인상은 거대함이었다.

 

제주도에서는 근고기라는 것을 판다. 근고기란 대충 부위 구별 없이 한근 단위로 잘라서 파는 고기라는 뜻인데, 여기는 아무래도 가격대가 좀 있어서 그런지 목살과 오겹살만 같이 파는 것 같았다.

 

너무 맛있다.

 

너무 맛있게 흑돼지를 먹고, 못난 표정으로 인생네컷을 찍었다.

 

아주 오랜만에 본 동기 형은 학교에서 공익으로 근무하고 있었다. 교사, 임고 끝난 백수, 공익 이렇게 세 명이서 모이니 금세 이야기거리가 떨어졌다. 우리가 언제부터 이렇게 멀어졌나 싶어서 조금 슬펐다. 근 1년동안 형과 제일 가까이 있었는데, 그 어느 때보다도 멀리 있는 느낌이 들었다. 형이나 나나 교직을 본격적으로 시작하면 참 이야기할 거리가 많을텐데. 얼른 그런 날이 오길 바란다.

 

그런 생각을 뒤로 하고, 우리가 묵기로 한 숙소인 월정리의 '여울목'(제주시 구좌읍 월정중길 51)으로 향했다. 아주 아늑하고 따뜻한 분위기의 게스트하우스였다. 방으로 들어가 사진을 만지다가 곯아떨어졌다. 많은 일들이 있었지만 바쁘게 잘 돌아다녔다. 내일은 일찍 일어나서 돌아다녀야지... 그런 각오를 하면서.

 

2편에서 계속

'국내여행' 카테고리의 다른 글

제주 12일 여행 - 6일차  (0) 2022.01.25
제주 12일 여행 - 5일차  (0) 2022.01.24
제주 12일 여행 - 4일차  (0) 2022.01.24
제주 12일 여행 - 3일차  (0) 2022.01.22
제주 12일 여행 - 2일차  (0) 2022.01.20